김홍신문학관

창작집

무죄증명

1980
평민사에서 출판
살면서, 솔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고 있습니다.
내 일기는 남이 볼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언제나 위선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,
정말 꾸밈엇이 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.
석달 열흘 동안 쓴 일기를 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.
나는 가련하게도 99.9% 이상의 악마와 0.1%이하의 천사였습니다. 그것도 날개죽지가 너덜너덜 찢긴 천사였습니다.
소설을 쓰면서 그 일기장 생각을 가끔 했습니다. 소설도 솔직하기가 어려운 거였습니다. 성질대로 쓰고 성질대로 살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.
만약 내가 죽어서 심판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염라대왕이 사람 사는 땅에서 지은 죄업 하나마다 실을 꿴 바늘로 한 바늘씩 뜨게 된다면 양심대로 살지 못한 나는 아마 틀림없이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히게 될 것 같습니다. 염라대왕은 땀을 뻘뻘 흘리며 며칠씩 나를 박아버릴 것 같습니다.
진실과 양심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.
그래서 그냥 사람같은 사람들과 뒹굴며 살고 싶습니다.